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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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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서울아산병원 의공학연구소장 최재순입니다.

소위 혁신 혹은 융합 기술 기반의 새로운 의료기기를 임상 실용화시켜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임상시험의 이슈에 대해 말씀드려 보려 합니다. 제가 책임 맡고 있는 저희 병원 의료기기 임상시험센터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중개임상시험지원센터 지정을 받아 의료 AI 소프트웨어, 의료 로봇, 의료 IoT 등 증강된 지능적 기능을 가진 의료기기를 중점으로 기업과 개발자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난 4년 동안 40개 이상의 제품 개발을 지원했으며 대부분이 의료 AI 소프트웨어였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초기부터 의료 AI 소프트웨어 관련 ‘규제’의 역사를 지켜보며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개인적으로 시작한지 1년 반 정도 된 작은 스타트업의 CEO로서, 심장 혈관 중재시술 보조를 위한 로봇 시스템을 개발하여 현재 임상 시험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름 20년 이상의 의공학 및 의료 기기 개발 분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임상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임상시험 과정에 대해 너무 피상적이고 얕은 이해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의료 AI 소프트웨어 개발이 제품화로 이어진 초기에 임상 시험을 설계하는 방법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었습니다. 연구자, 임상의 및 제조업체는 안전성, 성능, 임상적 효과의 평가에 대해 수많은 토론을 했습니다. 하나는 규제 승인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 보험 등재에 대한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명확하고 단순해 보이는 주제이지만 그 ‘경계선’은 경우에 따라 매우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약처는 의료용 AI 소프트웨어에 대한 임상시험을 지난 4년간 40여 건이상 승인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괄목할만한 수치인데 초기의 상황은 꽤 험난하였습니다. 프로토콜 디자인과 심의의 과정이 길고 까다로웠습니다. 이제는 몇몇 우수한 기업들은 사업을 확장하고 해외 승인을 얻고 있는 단계에 이르고 있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 센터에서 만나는 많은 신생 기업들은 초기에 다른 기업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어려움을 상당 부분 그대로 겪고 있는 느낌입니다. 한가지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의료 AI 소프트웨어와 같은 소위 혁신 기술 기반의 제품을 개발하는 제조사들이 IT 등 기술 전문 기업 성격이 많고 의료 기기 규제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제 규모가 커진 일부 기업들은 충분한 규제 담당 (regulatory affair) 전문인력을 두고 있기도 하지만, 많은 기업들에게 여전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최근 들어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더욱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는 느낌도 있습니다. 규제 기관이 기술에 대한 더 많은 경험과 이해를 얻음에 따라 적어도 제조업체의 관점에서는 임상 평가 (clinical evaluation) 에서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최근 데이터 프라이버시 보호가 큰 이슈가 되었던지라 보다 효율적인 새로운 법안이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게이트 키퍼가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이제 IRB 승인 외에 임상정보보호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새로운 규정으로 인해 후향적 연구가 더 쉬워졌다고 얘기하지만, 제조사들의 체감하는 차이는 크지 않은 듯 합니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기준, 여전한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의료 로봇의 경우는 임상시험의 방법은 상대적으로 더 명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평가변수, 기준 또는 역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의료 AI 소프트웨어와 마찬가지로 의료 로봇은 ‘수혜자’가, 의사 또는 환자 측면에서 서로 미묘하게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0년 경 수술로봇 초기에는 원격수술이 화두의 하나였습니다. 로봇만이 환자의 이익을 위해 개선된 임상 결과를 만들 수 있는 분명한 영역입니다. 환상적인 소식이지요. 외과 수술이 긴급하게 필요한 환자는 다른 대륙에 있는 우수한 외과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와 시도에도 불구하고 원격 수술은 확립된 의료 기술의 하나가 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교통 시스템의 발전 때문인지, 원격 수술 방식의 확인되지 않은 신뢰성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요즘 수술로봇 제조사들은 원격수술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아니지만 외과 수술이 아닌 다른 의료 영역에서는 원격의료 내지 중재시술은 다양한 새로운 기회를 다시 만나고 있는 듯은 합니다.) 대신, 우리의 현재 초점은 자동화에 있습니다. 로봇 활용의 근본적인 목적의 하나로 의사의 숫자와 숙련도 부족을 보완하거나 보조할 수 있는 자율/자동 기능을 들 수 있습니다. 로봇 사용의 직접적인 이점은 보다 정확하고 정밀하며 효율적인 절차를 위해 의사의 기술을 보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사에게만 혜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장기적이고 넓은 시야에서 보면 환자도 로봇을 활용한 수술과 중재시술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로봇의 활용으로 보다 많은 환자가 보다 나은 임상 결과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다만 문제는 이러한 환자의 이익은 논리적으로는 바로 추론이 가능하지만 정량적인 입증을 위해서는 장기간 대규모 임상 데이터의 축적이라는 길고 값비싼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검증하고 어느 선에서 시판을, 또 보험 적용을 허용해야 맞을까요? 자동차의 자율주행이 빠르게 실용화되어 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자율 주행 기능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운전자, 승객, 또는 둘 다입니까? 의료에서는 어떨까요? 빠르게 성장하는 기계 지능 기술은 자동 또는 자율 수술을 곧 임상 현실로 만들 것 같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멀리 미루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은 심혈관 중재 보조를 위한 새로운 로봇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임상시험의 설계 단계에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 식약처에 정식 신청은 되지 않았지만, 프로토콜 작성을 도와준 컨설팅 회사는 우리가 고려하거나 준비해야 할 많은 점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직 초기이고 시기상조인 우려가 있기 때문에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만, 몇 가지 주요한 이슈는 이러했습니다. 수술이나 중재시술의 보조를 위한 로봇의 임상시험에서 적절한 평가변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이것이 의약품이 아니라 의료기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규제 기관과 제조업체 간의 이전의 많은 논쟁이, 장치의 성능 또는 임상적 효과를 어느 선까지 평가할 것인지 여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쉽게 경계선을 넘어 긴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RCT (Randomized Clinical Trial) 가 모든 경우에 필수인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며 제조업체의 큰 관심사입니다. 임상시험의 과정이 길어지고 시험 규모가 늘어나는 것은 모두 비용으로 제조업체의 부담이 됩니다. 제조사의 입장에서 이 경우 무조건 기준을 낮추어 주기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환자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평가를 해야함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비용에 민감한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임상시험 내지 평가의 방법에 대해 규제기관의 ‘합리적인’ 판단을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환자에 대한 위해나 손상되는 이익이 최소한임에도, 임상시험의 규모가 커지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제조사는 제품의 실용화를 포기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 제품의 실용화를 통해 가능하였을 환자의 잠재적 이익이 역으로 제한되는 셈이 되는 것이지요.

저와 비슷하게 무지하고 순진한 제조사나 개발자들이 있으시다면 그분들에게 몇 가지 꼭 필요한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임상 평가 (clinical evaluation), 조사 (clinical investigation) 또는 임상 시험 (clinical trial) 은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기술 장치 개발의 맨 처음부터 장치의 용도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기술적으로 얼마나 대단하게 작동하는지 또는 어떻게 아름답게 구현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분명하게 환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고안된 임상적 용도입니다. 연구 개발의 긴 과정에 몰입해 있다 보면 이 간단한 질문을 잊는 것이 의외로 매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모든 과정과 단계에 걸쳐 임상 파트너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합니다. 의사는 적어도 의료기기 개발의 맥락에서 문제가 있을 때만 만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개발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말 그대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임상 파트너와 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임상적 효용의 구현을 향해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셋째, 가용한 지원기관이나 프로그램이 있으면 도움과 지원을 충분히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기 산업 지원을 위한 많은 좋은 프로그램과 병원 기반 서비스 조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깊이와 수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참여자가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수준의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회사의 대표라면 지금 바로 공부를 시작하시고, 미래의 상사가 될 분이라면 이 공부에 어떻게든 지금의 상사를 참여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조사뿐 아니라 규제기관, 컨설턴트, 모든 이해관계자가 연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임상시험이 무엇이며 환자에게 어떤 이점이 있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는 명확하고 간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 외로 다양하고 수많은, 임상 평가를 둘러싼 이슈와 상황, 관점이 있습니다. 한 분야의 전문성으로 전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개발자, 의사, 규제 기관, 환자 및 사회가 함께 대화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열심과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올바른 방향성과 공동의 노력이라는 촉매가 더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민감한 이슈들이 많아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리지 못하고 피상적인 되새김만 드린 점 송구하오며, 지루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11월 3일 저희 연구소 심포지엄에서 'New look at the barriers surrounding digital medicine' 이라는 주제로 조금 더 깊이 있는 논의를 가져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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