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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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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 전공자의 병원에서의 연구 경험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매일매일 치열하게 임상/교육/연구를 수행하다 보면 문뜩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 버렸나 하고 놀랄 때가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허수진 교수님의 추천으로 풍납동으로 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그게 2009년 가을이었으니 어느덧 13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버렸다. 2001년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일했던 시점부터는 21년을 병원에서 의공학 연구자로 지내온 셈이다.

 

물론 훨씬 오랜 경력의 연구자 분들이 많이 계셔서 아직 쑥스러운 경력이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병원에 연구를 하면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의공학연구소 주세경 교수

“소통” - 진부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임상의사와 의공학 연구자 간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에서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제 임상현장에서 쓸 수 있는 가치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임상현장의 요구, 소위 unmet need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1차 미팅을 통해 임상현장의 요구를 듣고 반드시 그 임상현장으로 가서 실제 어떻게 process가 진행되는지 파악한 이후 공학적인 해결 방안을 연구하게 된다.

 

그리고 반드시 여러가지 다양한 방안을 준비한 다음 다시 미팅을 통해 의공학자 입장에서 생각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임상의로부터 feedback받아서 최종적인 연구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기에 병원에서 임상의와 연구하는 과정에서는 필자가 생각하는 최상의 방안으로 연구를 진행했더니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기기가 임상현장에서 쓰이기에 여러 문제점이 있어서 대규모 수정이 필요했던 경험이 많았었다.

 

그래서 의공학연구에서는 반드시 중요한 결정 과정에는 수요자 및 사용자인 임상의와 함께 회의를 통해 결정을 하고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소통면에서 공학전공자가 병원에서 임상의와 함께 일하는 것이 유리한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어” - 우리나라가 다국어 문화권도 아닌데 무슨 언어인가 하겠지만 실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의사’와 ‘공학자’의 언어의 차이를 이해해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

 

모든 공학이 그렇진 않지만 필자가 전공한 전자공학은 물리와 수학, 특히 응용수학을 기반으로 시스템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학습 과정을 거치게 된다. 반면 의학의 근본은 화학과 생물학에 기반하고 있고 임상적 경험으로 완성되는 형태이므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또한 공학적인 접근은 창의성에 기반하지만 임상은 아무래도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한 분야라는 점도 분명한 차이라고 본다. 병원내에 공학연구자가 많지는 않다 보니 아무래도 외부 학교나 연구소와 공동연구를 하는 임상연구자 분들이 실제로 이런 서로 다른 지식적 배경의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보았다.

 

필자의 경우 학부에서 화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여서, 박사과정에서 의과대학의 기초과목인 생리학, 해부학 등을 그렇게 어렵지 않게 공부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정도 지식으로 충분하지는 않고 개별 임상과 교수님과 미팅할 때마다 공부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기초를 갖추어 놓은 것이 상호 대화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임상의사분들 중에서도 가끔 공학적인 지식에 목말라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아무래도 수학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으시는 경우가 많았다. 필자가 활동하는 대한의용생체공학회에서 몇 해 전에 임상의사를 위한 공학의 기초에 대한 강의를 special session으로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반응이 아주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시나 공학적 ‘언어’를 배워보고 싶으신 임상의사분들은 상기 학회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도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공학자가 의학적 지식을 공부하는 편이 좀 더 수월하다고 생각하지만 서로 다가서기 위한 노력은 어느 쪽에서 하던 가까워지는 결과는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존중” - 의공학은 지금까지 얘기한 것처럼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선 반드시 임상의사와 공학자 둘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

 

임상의사의 미 충족 수요 파악, 완성된 제품/기기/서비스 등의 결과물의 임상시험에서의 역할이 크다면, 공학자는 이러한 미 충족 수요의 공학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기기, 소프트웨어 등의 해결 방안을 개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이런 각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과의 공동연구는 대부분 좋은 성과를 내고 지속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는 반면, 지나친 욕심을 내는 분과의 공동연구는 한번 결과가 좋았다 하더라도 꾸준한 공동연구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특히 연구결과를 저널에 게재함에 있어 authorship문제가 가장 대표적인데, 본인의 경우 연구시작전 이러한 authorship에 대해서 분명히 얘기를 하였음에도 오랜 기간 기기를 개발해서 제공하고 좋은 결과가 나오자 맘대로 논문을 발표해 버리는 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의공학연구를 위해서는 임상의사나 공학자나 상호 존중 하에 협동연구를 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내기도 힘들지만 꾸준히 같이 연구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서 공동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민감한 부분을 같이 정리하고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변화” - 의학도 분명히 꾸준한 발전을 하고 있지만 공학은 그 변화의 속도가 따라가기 쉽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등장한 연구의 키워드만 해도 유비쿼터스, 나노, 3D 프린팅,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딥러닝, 인공지능, 가상현실, 디지털치료제, 메타버스 등 어마어마하게 많은 새로운 (물론 완전히 새로운 개념들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개념들이 등장하고 이들을 의료계로 접목시키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필자는 의공학 분야도 이런 기술적인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이를 의학에 적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가지 분야를 깊게 연구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분야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지 고찰하는 것이 더 나은 연구를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연구자가 마찬가지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의공학 연구를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하거나 하기 이전에 중요한 논문들을 살펴보고 기술변화를 선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세계적인 연구와 발맞춰서 나갈 수 있도록 꾸준히 공부하면서 스스로를 업데이트 시켜가는 게 의공학 연구자의 숙명이 아닐까 한다.

이제 코로나시대도 그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코로나로 고생하신 모든 분들이 좀 더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솔직히 필자보다 오랜 경력의 연구자분들이 많은데 이런 글을 쓰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의공학 연구소, 울산대학교 의과대학과 서울아산병원, 나아가 국내에서 의공학 연구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가볍게 읽으실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의 가정이 항상 건강하고 평화롭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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