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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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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학과 신항식 부교수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를 마주하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의료 서비스의 효율성과 접근성 향상은 의료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건강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디지털 기술의 포괄적 개념인 디지털 헬스(digital health)가 있다. 디지털 헬스라는 용어 정착 이전에는 정보통신 기술을 의료에 접목한 이헬스(electronic health(e-health)), 언제 어디서나 접근가능한 건강관리 서비스를 강조하는 유헬스(ubiquitous health(u-health)), 모바일 건강관리에 특화된 엠헬스(mobile health(m-health)) 등의 신조어들이 신개념 헬스케어의 전국시대를 열었으나, 이러한 모든 개념들은 최근 디지털 헬스라는 보다 광범위한 패러다임의 일부분으로 편입되고 전문화 되었다.
디지털 헬스와 필자의 인연은 필자가 2004년 연세대학교에서 수학당시 산업자원부 지원을 받아 국내 최초의 이헬스 센터 개소와 원격건강관리 및 e병원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후 이헬스와 약간의 관점 차이는 있지만 서울대학교 주도하에 유헬스라는 이름으로 주목을 받았었고, 스마트폰 보급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2007년 말, 2008년 초반부터는 엠헬스라는 용어가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필자가 디지털 헬스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은 2012년 경으로 삼성전자 재직 당시였다.  

새로운 헬스케어 컨셉을 구상하던 중 구글링(googling)을 통해 디지털 헬스라는 용어를 처음 발견하고 조용히 유레카(eureka)를 외친 기억이 있다. 디지털 헬스라는 용어가 언제 처음으로 등장하였는지는 명확히 확인할 수는 없으나 2010년 언저리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이상은 오래된 기억이라 약간의 왜곡이 있을 수도 있다.)

 

디지털 헬스는 병원 디지털화 또는 디지털 병원(digital hospital)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디지털 병원은 의무기록, 처방전, 의료영상, 생체신호, 진단검사 데이터, 유전정보 등의 각종 의료 데이터와 병원 정보 시스템, 처방 전달 시스템, 원무 시스템, 보험 시스템 등의 정보 인프라를 디지털화 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디지털 병원과 디지털 헬스는 데이터라는 핵심 구성요소를 공유하지만 디지털 병원의 주요 목적이 운영 효율성과 환자 기록 관리인 것과 달리 디지털 헬스의 주요 목적은 지속적인 환자 참여, 실시간 건강 모니터링, 맞춤형 진료를 통한 일상생활 전 범위에서의 건강 증진으로 두 개념은 차별화 된다.

디지털 헬스 이외에도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 디지털 의학(digital medicine)과 같은 용어 또한 현대 헬스케어 담론 전반에 걸쳐 널리 사용되는데, 이상의 용어들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국제적 합의를 다룬 공식 근거들은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여러 문헌을 종합하여 확인할 수 있는 바는 디지털 헬스가 가장 광의의 개념이고 디지털 헬스케어, 디지털 의학으로 갈 수록 그 범위가 구체화 된다는 정도이다. 범위의 관점에서 디지털 헬스는 건강 뿐 아니라 웰니스(wellness) 까지 포괄하는 디지털 기술로서 단순한 기술을 넘어 사회, 제도적 관점을 포함하는 용어로 인식된다. 한편, 디지털 헬스케어는 환자에게 효용성과 접근성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디지털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밖에 디지털 의학은 환자 치료 및 관리 정확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인 맞춤형 의료 및 디지털 도구에 집중한다. 사실 이러한 정의나 표현들은 다소 난해하므로, 디지털 헬스, 디지털 헬스케어, 디지털 의학을 각각 건강 > 건강관리 > 의료에 대입하여 보면 어떤 느낌인지 보다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여러 기사와 정부 정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 세가지 용어 중 디지털 헬스케어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유를 추측하자면 전반적인 산업관점에서, 디지털 헬스와 디지털 의학은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한정적인 반면 디지털 헬스케어는 ‘(의료를 포함하는)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기술’로 명확하고 적당한 범위를 제공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본질은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건강 관련 디지털 데이터를 ‘획득’하고, ‘가공’하고, ‘활용’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특징들은 획득: 웨어러블(wearable), 사물인터넷(internet-of-things(IoT)), 클라우드(cloud), 가공: 빅데이터(big-data), 활용: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AI))과 같이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들과 긴밀하게 연결 된다.

데이터 획득 단계에서 주요 이슈는 데이터 품질에 대한 보증이다. 병원내에서 획득되는 데이터는 검사실이라는 통제된 환경에서, 전문 교육을 받은 의료인이, 인증된 의료기기를 사용하여 획득하므로 최소한의 품질과 재현성이 보장된다. 반면, 개인에 의해 획득되는 데이터는 의료기기 미인증 제품을 사용하거나, 사용자 전문지식 부족, 측정 환경 다양성으로 인하여 그 품질을 보장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활용되는 방법 중 눈에 띄는 것은 사용자경험(user experience(UX)) 개선을 통한 측정 결과의 정확성 및 재현성 향상이다. 제품 사용 조건을 특정하거나 (예: 수면 중),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며 데이터 품질을 확보하는 방식(예: 화면 가이드에 따라 측정, 움직임 발생시 다시 측정)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비전문가에 대한 교육 또는 측정 상황에 대한 통제 효과를 제공할 수 있으므로 측정되는 데이터의 품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데이터 가공 단계에서는 다양한 기기로부터 획득되는 데이터간 표준화와 데이터 큐레이션(curation)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다행히도 심전계, 산소포화도계와 같은 핵심 측정 기기들은 표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저장 파일 포맷이나 표본화 주파수(sampling frequency) 정도를 조정 하여 데이터간 호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는 매우 다양하며 표준화되지 않은 측정법을 적용한 경우도 빈번하게 발견된다. 쉬운 예로, 맥박수 측정을 위해 대다수의 웨어러블 기기에 탑재되는 광용적맥파(photoplethysmogram(PPG))의 경우 관련된 표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측정되는 값의 정확도 등은 전적으로 제조사 보고에 의존하고 있다. 데이터 가공에서의 또 다른 주요 이슈인 데이터 큐레이션은 데이터 라벨링(labeling)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획득된 데이터에 임상적 소견을 접붙이는 과정이다. 데이터 큐레이션은 매우 노동 집약적인 과정으로, 지금까지의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진의 고된 수작업을 통해 수행되어 왔다. 하지만, 정보의 디지털화에 따라 생성되는 데이터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수집되는 모든 데이터를 큐레이션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큐레이션 하기위한 자동 큐레이션 기법과, 비지도학습(unsupervised learning) 또는 준지도학습(semi-supervised learning)과 같이 레이블을 요구하지 않거나 최소한도로 요구하는 학습 기법들에 대한 관심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데이터 활용 단계에 있다. 데이터 획득과 가공에 대한 디지털 기술들은 지금까지의 의료 발전과정에서 이미 점진적으로 적용되어 왔다. 예를 들면 부정맥 환자 모니터링을 위한 텔레메트리(telemetry) 기술은 심전계를 보완하는 목적으로 이전부터 적용되어 왔고, 병원내에서 생성되는 데이터 수집 및 중앙 관리 인프라 또한 이미 보편화 되어 있다. 이것은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 요소 중 데이터 획득과 가공 기술이 의료현장에 이미 적용되어 있는 기술의 연장선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데이터 해석 관점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는 인공지능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인공지능은 고도로 훈련된 의사의 고유 영역인 임상적 의사결정에 도전하고 있다. 이것은 기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들이 의학적 의사결정을 위한 보조 도구로써 활용 되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지금까지 정보 획득 및 가공 과정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획득된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고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의료전문가가 있었다. 이것은 획득된 정보가 전문 지식을 가진 감독자 (또는 그룹)에 의해 관리되므로 처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교정하고 결과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지능 기반 자동 진단기술 도입은 최종 결정자 목록에 인공지능을 추가하는 것으로, 인공지능이 모든 의료적 판단 프로세스에서 의료 전문가를 대체 할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다. 만약 인공지능이 의료전문가와 동등 이상의 전문지식과 의사결정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공장자동화가 생산 효율성을 크게 증가시켰던 것과 같이 자동화를 통해 의료의 효율성 또한 크게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 자명하다. 문제는 지금의 인공지능이 정말 의료전문가를 대체할 수 있는가에 있다.

딥러닝을 처음으로 제안한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제프리힌턴(Geoffrey Hinton) 교수는 2016년 이래 영상의학 전문의보다 딥러닝 인공지능이 영상 판독을 더 잘하게 될 테니 영상의학 전문의 양성을 멈춰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의 수많은 의료 영상 판독 연구결과들은 힌턴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다른 임상 분야에서도 임상 의사결정에 있어 인공지능이 전문의 수준의 정확도를 보일 가능성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공지능이 의료 전문가와 대등한 수준의 판독 능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여럿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공지능이 의사의 최종 의사 결정을 대체할 수 있다고 확언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임상적 최종 의사결정을 인공지능에 위임할 수 없는 이유로는 학습데이터 편향으로 인한 큰 결과 변동성과 외부검증을 통한 범용성 확보 사례 부족이 자주 언급되며, 이 외에도 의학적 의사결정 프로세스의 복잡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본질적인 한계 또한 고려될 수 있다. 이는 의학적 최종판단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분석과 의사결정 결과가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데, 단일 검사 결과 판독에 우수한 성능을 보인 인공지능 모델이 존재하더라도 복잡다단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통틀어 임상적으로 수용 가능한 정확도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못된 임상적 의사결정을 피하기 위해 의료분야에서 요구하는 진단 정확도는 언제나 100%이고 이 것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것을 감안한다면 의료분야에 인공지능을 적용한 연구들이 암묵적으로 0.8 이상의 곡선하면적(area under the receiver operating characteristic curve(AUROC))을 ‘least acceptable’ 기준으로 삼고 있는 상황은 실제 임상 환경의 요구 성능과 현재 인공지능 모델의 성능 격차를 보여주는 현실의 반증일 수 있다.

 

한동안 의료에 혁신을 가져올 것처럼 떠들썩 했던 IBM Watson 프로그램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필자는 한편으로는 아쉬우면서도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Watson의 실패 이후 불과 5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등장한 chatGPT는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이미 그것은 도래할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긴장감을 주었다. 의료분야에 디지털 기술의 전면적인 도입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혁신이 비선형을 넘어 복잡계chaos에 가까운 의료라는 환경에 소프트랜딩soft-landing하는 것과, 아날로그 인간과 디지털 인간(인공지능)이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복잡한 변화의 과정에서 의학과 공학의 접점에 있는 우리의 역할은 중요를 넘어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의학과 공학의 경계선상에 서서 미래 의료 패러다임의 안착을 위한 길을 닦고 있는 의공학 연구자들에게 타노스(Thanos)의 말을 빌려 인사를 전한다 ‘We’ll be inevi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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