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의공학연구소장 최재순
제가 의공학을 하려고 병원에 발을 들인 첫걸음이 지난 94년 여름 언젠가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의료인은 아니지만, 이후로 묘하게도 지난 30년 동안 몇 군데 이전을 거치는 동안에도 줄곧 제가 출근하는 일터는 병원에 늘 있었습니다. 병원과 그 둘러싼 의료 시스템과 그 종사하는 분들의 여러 복잡한 다이나믹과 얽히고 섥힌 상황과 생리들을 오랜 동안 지켜보아왔던지라 오늘의 의료사태 앞에 여러가지로 생각이 길어지고 맘이 어렵습니다. 매우 조심스럽지만 소위 ‘공돌이’스런 한 가지 생각만 짧게 말씀 드려 보려 합니다. 결국은 ‘보다 좋은 것’을 받고 싶어하는 인지상정이 한 곳에 모두 모였는데, 분명한 한계를 가진 자원을 가지고 나누어 쓰면서, ‘보다 좋은, 보다 많은’ 것을 원하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마법 같은 일은 결국 불가능한 것이라, 숨은 ‘눌린 곳’, 숨은 ‘빌린 자원’들이 있었고, 결국은 언젠가는 해결되었어야할 묵은 고름이 터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격한 다툼이 있고 모두들 각자 한 마디가 있지만 사실 모두가 이 복잡하기 그지 없는 드라마에서 다 역할을 했던 것을 부정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건강하셔서 보험료 투입만 해 주셨던 많은 분들은 약간 예외일까도 싶지만 결국에는 정말 소수를 제외하고는 언젠가는 다들 병원을 가지 않을 수 없으시니 그도 아닌 것 같습니다. 흐름을 바꾸고, 규칙을 바꾸고, 보조적인 절차들을 더하고, 여러가지 방책들이 당연히 정교하게 고민되고 추진되어야할 것임에 더하여서, 이 시스템 전체에 ‘입력’과 ‘출력’을 균형을 맞추는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해법들이 당연히 제외될 수 없을 것인데, ‘증원’, ‘쇼핑’ 같은 구체적인 키워드들을 얘기해 보기 시작하면 너무나 긴 얘기의 반복이 될 것이고, 그 깊이를 감당하시는 해당 전문가들이 수없이 계시니, 전혀 다른 한 가지만 말씀 드려 보려고 합니다. 역사를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제 짧은 이해에는, ‘공돌이’들의 역할은 뭔가 ‘기구’와 ‘기술’을 새로이 만들어서, 이전보다 더 나은 ‘자원’ 또는 ‘산출’을 이루고, 모두가 모인 시스템에 이를 더하여서, ‘부족’을 채우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것’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온 것이라 싶습니다. 그 실제가 무엇일런지는 이후의 고민의 주제이지만, 이 의료 시스템 내에서도, 온 사회가 ‘비용’은 더 이상 들이지 않으면서, ‘인력’도 늘이고, ‘소비’는 줄이지만, 그래도 해결할 수 없는 ‘부족’을 채워낼 뭔가 새로운 ‘자원’ 내지 ‘산출’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공돌이’들이 만들어 내어야할 ‘기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전의 의공학은 그야말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일들에 많은 성과를 내어 왔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고, 다룰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기술’의 활용으로 해 낼 수 있게 한 많은 개발들이 있어 왔습니다. 이제 여기 한 가지 숙제가 더 얹어진다고 보면 어떨까 합니다 (전에 없던 주제는 아니지만 이제 사뭇 더욱 진지하게). 결국 한정된 재원과 인력으로, 늘어가고 높아만 가는 수요를 감당하자면, 그 갭을 메울 수 있는, 기존 보다 ‘효율’을 높이고, ‘품질’을 증강할 수 있는 ‘기술’이 역할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다만, 이 기술을 추구할 ‘공돌이’ 여러분들 앞에 매우 큰 난관이 하나 있긴 합니다. 그 ‘기술’의 효용을 증명해서 이 사회가 그 기술을 사용하는 비용을, 다른 비용과 대체하여서, 지불하는 결정을 해 주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오늘 다른 많은 이슈들에 못지 않게 지극히 길고 어렵습니다. ‘나의 문제’는 아닐 수 있겠으나, 조금만 멀리 넓게 보면, 인류는 또 지구는 어쩌면 이제는 ‘다운힐’에 접어든 게 아닌가 싶고, 이제 우리가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방식은 그 판단이 이전과 달라야 상식일 것 같습니다. (알고 동의하지만 귀담아 듣기를 계속 미루게 되는 환경보호론자의 외침 비슷한 것을 저도 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만.)
변함 없이 또 봄이 왔습니다. 2012년 3월 의공학 연구개발센터로 출범한 이래, 열세번째 맞이하는 봄. 의공학 기술 실용화, 지적재산권등록 및 기술이전, 논문 출판의 양적, 질적 성장, 대형 과제 연구비 수주 등의 여러 지표들이 이제 가장 왕성한 정점에 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올리기까지 밤낮으로 노력해주신 의공학연구소 식구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저희가 자랑해 마지 않아 온 국내 최대 임상 현장 기반의 가장 앞선 임상 현장 미충족 수요의 파악과 이를 해결하는 선도적 기술의 개발, 이제는 진지한 물음 앞에 서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금의 우리 의료 시스템의 깊은 어려움과 숙제 앞에 의공학인들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다만 개발을 넘어서서 실제적인 변화와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의 개발, 저희 의공학연구소가 목표해야 할 다음 도약의 주제라 싶고, 이러한 새로운 발걸음에 함께 많은 분들이 관심가져 주시고, 끊임 없는 지도편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시절이라 짧게 인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