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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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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의학연구개발센터 센터장

영상의학과 이덕희 교수

의료기기, 꼭 국산을 써야할까요?

아산생명과학연구원이 문을 열 당시 R&D 사업화실에서 일을 했던 것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그 몇 년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고, 재미있었던 추억들도 많았는데,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당시 우리 풍납동 캠퍼스에서 나오는 연구개발 기술의 상용화를 촉진하기 위해, 국내의 여러 제약사나 의료기기 회사 관계자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도 안타깝게 기억되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기기 회사들의 영세성 문제였다. 기업 관계자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기술의 취약성, 부족한 개발 자금, 연구 개발 능력 부족 등의 문제들을 자인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유독 듣는 의사의 입장에서 낯 부끄러운 지적이 있었다. 바로 의료 현장에서 그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불신의 문제였다. 특히 우리 병원과 같은 대형병원에서는 더 심하다고 했다.

그런 문제를 이미 많은 관계 전문가들이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주관하는 국책 연구개발 지원 사업들을 보면,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의 구매 조건부 의료기기 개발 지원 사업 등이 있는데, 그 사업들은 목적 자체가 대형 병원 사용자들에 대한 국내 개발 의료기기의 접근성을 높이려고 하는데 있다. 문제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내 개발 의료기기들이 의료 현장에서는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는 구매 조건부 지원 사업 대상 품목들도 사업이 끝나면 슬그머니 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의료기기의 중요 덕목인 유효성과 안전성이 수입 제품에 뒤져서 일까? 제품의 디자인이나 사용성이 멋진 병원 환경에 어울리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나의 현란한 의료기술을 구사하는데 적합하지 않아서일까?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그 중 오늘 이 글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짚어보고 싶은 포인트 두 가지를 말씀하고 싶다.

 

먼저, 이미 숙련된 의사들에게 해당되는 경험일 수 있겠는데, 어떤 새로운 의료기기가 개발되어 임상 현장에서 사용되기 시작할 때, 고위험시술의 경우 회사에서 개최하는 사용자 워크샵이나 프록터쉽(proctorship) 등을 통해서 제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사용법을 익히고, 문제 발생시 대처 방법도 숙지한 뒤에 우리 환자에게 적용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그 과정 동안 개발한 회사에서도 끊임없이 우리의 사용자 경험을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조기 파악을 하고 개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용자가 그 제품을 익숙하게 사용할 때쯤 되면 사실상 원래 시작했을 때의 그 제품 그대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사용자들이 자신이 미숙해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되는 문제도 사실은 제품의 문제가 겹친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새로운 제품의 개선에 참여를 한 것이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소위 '명품'이 탄생한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연구 결과에 기초하여 잘 만들어진 제품이라도 임상에서 사용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한다면, 그 제품의 운명은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많은 국산 신개발 의료기기들이 이런 상황에 있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벌써 오래된 얘기이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하나를 소환해서 말씀드리고 싶다. 뇌동맥류 코일 색전술이 막 새로운 시술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처음 개발된 제품 외에 미투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할 시점이었다. 2005년경 에모리 대학 방문 기회에 시술 참관을 할 기회가 이었는데, 당시 우리 의료 여건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하나에 1200불 정도되는 코일 (대개 시술 당 5-6개의 코일이 소요된다)을 한 번 넣어보고 크기가 적당하지 않은 경우 바로 쓰레기 통으로 던져 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그 코일은 와이어와 분리 되기 전에는 얼마든지 제거했다 다음 코일로 선택되어 사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바로 버리지는 않고 있다. 시술이 종료될 때까지 다시 사용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으므로 미리 버릴 이유가 전혀 없다. 비상식적인 행위였다. 다음 코일로 쓸 수도 있는데 왜 바로 폐기하느냐는 내 질문에 그 시술자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너무나 간단 명료하게 답했다. 한 번 몸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최상의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 날 그는 총 22개의 코일을 사용했다. 역시 미국은 다르기는 다르구나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 시술자가 이어서 한 말을 통해, 더 분명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환자는 보험료를 냈고 코일 비용은 보험사가 지급할 것인데, 시술자가 무엇 때문에 다시 넣기 위해서 추가적인 위험 부담을 하고 시간을 낭비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아 그렇다. 미국 내에서, 미국 노동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미국 제품이, 미국 환자를 위해서 미국 의사가 사용하는 것이니, 그 금액이 상당함에도 오히려 그것은 미국내 경제 활동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적지 않은 것이다. 의사의 럭셔리한 선택의 낙수 효과가 여러 경제 주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미국에서의 살인적인 의료비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고가의 의료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키워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미국 내에서만 일어날 경우에는 긍정적인 효과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그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려면 일단 국산 코일이 있어야 미국 사례가 적용될 기회라도 생긴다. 지금 우리 상황은 그런 명품 코일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 전혀 되지 못한다. 물론 다른 치료 방법이 없어 고통 받던 한국 환자에게 의료 시혜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높은 가치는 당연히 칭찬 받아야 하겠지만, 고가의 수입 의료기기가 필요한 새로운 고위험 술기를 멋지게 펼친 한국의 의사들은 어찌 보면 재주만 넘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

 

그래서 국산 의료기기를 사용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시 돌아와보면, 오늘 제 말씀이, 새롭게 사용 허가를 받고 임상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국산 제품인 경우, 우리 국내 의료인들의 선택을 당할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으면 한다는 말씀으로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대신하고 싶다. 다만, 그 제품의 목적, 작동 원리, 성능, 사용 방법 등을 충분히 숙지하고 사용한다는 전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에 우리는 이런 뉴스를 접하게 될 것이다.

 

' 국산 의료기기 명품 또 하나 추가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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