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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폐 일부 떼내 딸에게... 법 위반 감수하고 환자 살린 병원
서울아산병원 국내 최초 '생체 폐이식 수술' 성공
"선생님, 이젠 숨이 안 차요"
수술환자, 집도의에 첫마디
국내 폐이식 대기자 300여명
이식 받으려면 4년 넘게 기다려야
현행 뇌사자 폐이식만 가능
생체 폐이식은 불법이지만 학회·정부 자문받고 수술
November 16, 2017
지난달 21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동관 3층에 있는 3개 수술방에 의료진 50여 명이 모였다. 폐고혈압으로 생사 갈림길에 놓여 있던 오화진 씨(20)에게 부모의 폐를 이식하는 수술을 하기 위해서다. 아버지 승택씨(55)가 오전 9시 반 5번방 수술대에 올랐다. 의료진은 그의 폐 오른쪽 아랫부분을 떼 화진씨가 대기하던 4번방으로 전달했다. 7번방에선 어머니 김해영 씨(49)의 왼쪽 폐 일부를 떼어내 4번방으로 넘겼다.
폐를 통째로 떼어낸 화진씨에게 부모가 기증한 폐의 동맥, 정맥, 기관지를 잇는 수술이 이어졌다. 8시간이 넘는 대수술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엿새 뒤인 10월27일 화진씨의 부모가 퇴원했다. 같은 날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화진씨도 인공호흡기를 뗐다. 수술 전 숨이 차 세 걸음도 걷지 못하던 화진씨는 지난 6일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 “선생님 숨이 안 차요.” 화진씨가 수술해준 집도의 박승일 흉부외과 교수에게 한 말이다.
▲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왼쪽 두 번째)가 산 사람의 폐 일부를 떼어 폐기능이 멈춘 환자에게
이식하는 생체 폐이식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부모 폐 일부 떼어 딸에게 이식
서울아산병원이 국내 첫 생체 폐 이식수술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폐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는 모두 뇌사자의 폐를 이식받았다. 생체 폐 이식수술이 불법이어서 이를 시도하는 의료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 폐 이식 대기자는 300여 명이다. 폐 기증 수술까지 평균 1456일을 기다린다. 이들이 폐세포가 온전히 살아 있는 뇌사자를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기증을 원하는 뇌사자가 적은 데다 폐는 다른 장기보다 먼저 망가지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서울아산병원에서 폐 이식을 받기 위해 대기하다 사망한 환자만 32명이다. 이식 대기자 68명의 절반에 이른다.
화진씨도 이들 중 한 명이었다. 2014년 폐고혈압 진단을 받은 뒤 지난해 7월 심장이 멈춰 심폐소생술까지 받았다. 수술이 급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부모가 기꺼이 폐를 이식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현행 장기이식법상 생체 폐 이식수술이 불법인 것이 걸림돌이었다. 산 사람의 장기를 떼 이식하는 수술은 신장, 간, 골수, 췌장, 췌도, 소장만 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의료진이 무기징역 또는 2년 이상 징역 처벌을 받는다.
◆복지부 “제도 개선하겠다”
화진씨 상태는 나날이 나빠졌다. 보다 못한 부모는 지난 8월 국민신문고에 “생체 폐 이식을 허락해달라”고 글을 올렸다. 생체 폐 이식수술이 가능한 일본 교토의대병원에 원정 이식수술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이들의 사연을 들은 의료진이 나섰다. 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IRB)와 대한흉부외과학회 등에 수술 가능 여부를 물었다. 의료진은 3D(3차원) 프린터로 장기 모형을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하며 수술에 대비했다.
이들의 사연을 들은 의료진이 나섰다. 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IRB)와 대한흉부외과학회 등에 수술 가능 여부를 물었다. 의료진은 3D(3차원) 프린터로 장기 모형을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하며 수술에 대비했다.
병원 IRB와 외부 기관 모두 “수술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보건복지부도 힘을 보탰다. 지난 9월29일 ‘장기 등 이식윤리위원회’를 열고 수술 타당성을 논의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해도 형사고발하지 않겠다고 결론을 냈다.
화진씨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여전히 수백 명의 폐부전 환자가 생사 갈림길에 놓여 있다. 박 교수는 생체 폐 이식수술을 하루빨리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복지부는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기이식 전문가위원회에 수술 승인 권한을 주거나 복지부 고시 등으로 의료현장 최신기술을 반영할 수 있도록 규제 조항을 정비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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